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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준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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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3 11:35:23, 조회 : 2,418, 추천 : 7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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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과 불복종 저항운동> 강연회
◆ 일시 : 3월 28일 (수) 저녁 7시 30분
◆ 장소 : 울산과학대 농성장
◆ 강사 :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기본권이 철저히 짓밟히는 현실에 맞선 불복종 저항운동에 대한 논의자리가 3월 8일 열립니다.
현재 울산과학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이 지역투쟁의 중심에 있는 만큼 이 투쟁과 결합하는 강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3월 28일 울산과학대 지역집회 후 농성장으로 이동해서 강연회를 갖고자 합니다.
아래 박래군 동지가 보내온 글을 붙여놓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문의 : 김석한 019-243-6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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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뜻과 인권의 현실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1. 희망을 잃은 시대의 인권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세계인권선언 전문에 나타난 인권의 정의다. 세계 2차 대전 직후인 1948년 12월 10일 유엔 3차 총회는 역사적인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인권을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규정한 것이다. 바로 이 인권을 무시하고 경멸함으로써 인류는 2차 대전처럼 “야만적인 행위”를 경험했고, 나아가 “언론의 자유와 신념의 자유를 누리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인권은 “세계 자유와 평화의 기초”라는데 인류는 합의했다.
천부인권(天賦人權) 사상에 바탕을 둔 이와 같은 선언은 이후 현대 사회에서 각국의 헌법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적인 권리장전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공포와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인류의 염원이었다. 전쟁의 참화 끝에 확인한 이런 정신은 이후 현대 국가의 운영원칙으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위치로 인권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세계는 그 선언이 있은 지 60년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 선언에서 인류가 확인한 인권에 대한 동의와 지향은 곳곳에서 파산되었고, 특히 최근의 자본의 지구화=신자유주의 세계화 앞에서 인권의 가치와 지향은 무기력하게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유엔 총회에 모여서 무엇보다도 지고한 가치인 인권의 소중함에 합의하였던 각국 정부 대표들은 이제는 인권을 외교적인 수사로만 인정한 채 곳곳에서 인권의 침해를 방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권의 침해를 획책하는 국제금융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갈수록 세계는 극단적인 빈부격차의 심화로 불평등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한때 민주주의의 발전 경향으로 일컬어지던 제3세계의 민주화도 주춤하고 있다. 오로지 무역경쟁에서 이겨야 생존할 수 있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야만적인 논리만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하지 말자던 평화의 약속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빛을 발한 지 오래다.
이처럼 곳곳에서 유린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은 그런 이유로 해서 인권의 복원을 더욱 절실한 과제로 만들고 있다. 자유는 유보되고 있으며, 평등은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더욱 심화되는 불평등의 관계로 인해 그 이념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지금 인류는 ‘희망을 잃은 시대’를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 이후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을 이어 자신이 인권의 옹호자임을 자처하면서 인권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통치이데올로기로 만들어간다. 이에 따라 지식인들이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며, 심지어는 관료들이나 국가권력조차 인권을 입에 자주 올린다. 그리고 이제는 인권의 이름으로 인권을 억압하는 모순된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권운동의 성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파탄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이 글에서는 인권의 뜻을 인권의 역사를 통해서 확인하고, 이로부터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를 정리하고자 한다. 그런 뒤 한국사회 인권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살피고, 현재 우리 사회 인권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고민하고자 한다.
2. 인권의 역사를 통해 본 인권의 뜻과 내용
1) 인권의 기본개념
앞에서 잠깐 살펴본 것처럼 인권은 단지 모든 권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고, 넘겨줄 수도 없는 인간이 인간답게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인 기본적인 권리를 인권이라고 말한다. 이는 보통 헌법에서 기본권이라고 규정되는 것들이다.
이런 인권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니고 있다. 인권이란, ① 법률 및 관습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근본적으로는 국가권력을 제한한다. ② 인권은 모든 장소의 모든 인간존재가 평등하게 소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권은 모든 특권개념과는 완전히 반대된다[인권의 보편성]. ③ 어떤 특수한 입장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권리는 다른 사람의 비슷한 권리나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만큼만 제한되어야 한다[인권의 상호의존성].
물론 인권은 실정 법률을 넘어선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인권운동가들이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그 법이 인권의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들의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 국민들의 사상과 신념, 양심을 통제하는 법을 제정하여 국민들을 억압하기 때문에 인권의 원칙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또,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해 나서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정책으로 인해 사회적인 약자들을 더욱 빈곤한 처지로 전락시키고, 불평등을 조장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의 입장에서 다양한 차이들-언어, 민족, 인종, 피부색, 계급, 정치적 의견 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반대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권은 종종 국경을 넘어 심각하게 내정간섭을 한다. 물론 미국과 같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인권을 이용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이런 정신은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 인권조약 등에서 보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누구나～’와 같은 형식으로 서술되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권의 내용은 보통 3개의 범주로 나누어 설명된다. 먼저, 시민·정치적 권리 영역이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에서 21조에 해당하는 권리들인데, 신체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로 나뉘는 이들 권리들은 국가권력의 부당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확대시키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국가권력은 영장 없이 국민을 체포할 수 없고, 고문을 할 수 없고, 불공정한 인신구속절차나 재판과정을 강제하면 비난을 받게 된다. 또,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며, 피선거권도 이에 해당한다.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는 국가권력이 간섭할 수 없는 불가침의 권리이다. 누가 무슨 사상을 갖든 그것을 이유로 처벌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자신의 의사와 반해서 드러내도록 강요받아서도 안 된다. 자신의 사상이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명백하고도 현저하게 국가안보나 공공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한 국가권력은 이를 보호해야 한다. 이런 시민·정치적 권리를 보통 자유권이라고 말하며, 주로 ‘～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이는 소극적인 권리라고 말한다.
두 번째 권리 영역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영역이다. 세계인권선언 22조에서 27조에 규정된 권리들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와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일정기간의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을 말한다. 이 권리들은 일정기준의 분배정의에 따라 무형의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가치에 대한 요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자원배분에서 국가의 간섭을 필요로 한다. 이들 권리들은 보통 사회권이라고 말하며, 보통 ‘～에 대한 권리’라는 형식으로 기술된다. 따라서 이는 자유권에 비해서 적극적인 권리로 구별된다. 즉, 국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권리이다. 사회권은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아서 발생한 것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평등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보통 ‘행복을 추구할 권리’로 대표되는 권리들이다. 그러나 서구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발전해온 기존의 인권체계에서 사회권은 매우 등한하게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도 사회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서구 유럽의 사회복지국가에서는 광범하게 이들 권리들을 인정하는 추세였지만, 이를 기본권보다는 사회복지적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했다. 그나마도 신자유주의의 대두에 따라 사회복지 국가의 기본원리도 도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보통의 나라들은 프로그램 규정설을 도입하여 실정법으로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는 이들 권리야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강한 집착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구별되는 권리들이 연대와 단결의 권리이다. 이는 집단권이라고도 말해지는데, 현대 사회에서 개인을 중심으로 한 인권이 이제는 집단으로 옮겨오고, 구조적인 문제로 중심축이 변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의 두 권리들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세계인권선언에서 정리되었고, 국제인권조약으로 확립된 반면에 이 권리는 이제서야 논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생성단계에 있는 권리들인 셈이다. 여기서는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누릴 권리, 환경에 대한 권리, 민족자결권,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권리, 우주개발에 대한 권리를 비롯해 최근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반영하는 프라이버시권 등이 이에 속한다. 또한, 경제의 개발에 참여하고 개발이익의 분배에 참여할 권리를 규정한 발전권도 이에 속한다.
이들 권리는 세상에 등장한 시기에 따라 각각 1세대, 2세대, 3세대 인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권리 영역을 나누는 것은 카렐 바삭(Karel Vasak)의 3단계 인권론에 근거한 것이고,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일반화된 구분법이다.
하지만, 이런 인권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과거에 인정받지 못한 권리들이 지금은 인권으로 인정되는 것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인권의 항목들은 오랜 세월 권리를 쟁취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에 의해 인권의 자리로 굳히게 된다. 인권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것은 그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2차 대전 이전까지 인권은 Rights of Man이었다. 인권의 향유자에서 여성은 제외된 것이다. 이때까지 여성은 무권리의 상태였고, 단지 보호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여성운동의 발전에 따라 여성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권리가 보장됨에 따라 2차대전 이후에는 오늘날의 Human Rights로 바뀌게 되었다. 또, 위에서 열거한 각 세대의 인권들은 새로운 세대의 인권이 등장함에 따라 앞 세대의 인권영역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앞 세대의 인권을 풍부히 하면서 확장해 나간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인권의 영역들이 구축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권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의미를 더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하자.
2) 인권의 역사
인권은 자본주의의 역사와 더불어 탄생하고, 발전하였다. 근대 이전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영국의 봉건영주들이 제멋대로의 억압을 일삼는 국왕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마그나 카르타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영국 국왕의 약속인데, 이로부터 봉건영주들의 ‘고래의 권리와 자유’가 처음으로 문서로 확인되었고, 이로부터 이후 영국 인민의 권리와 자유로 재해석, 확대되어갔다.
중세봉건 말기에 시민계급이 등장하고 이들은 재산의 획득과 소유를 권리로 인정받고자 했다. 15～16세기에 시민계급들은 자본을 축적하면서 그에 따른 사회적 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봉건 특권계급들에 의해 자신들이 부의 축적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이 오자 그들은 ‘자유’를 주장하고 ‘법 앞의 평등’을 내세우게 되었다. 이로부터 근대 시민혁명은 시작되게 된다. 근대시민혁명기의 인권 이념의 특징은 ① 인권은 목적, 권력은 수단 ② 인권의 불가침성 ③ 자유권 중심의 인권보장 ④ 참정권이다. 인권을 목적으로 보는 것은 정부를 인권의 유지, 옹호의 수단으로 보면서 이를 위해서만 권력을 인정하게 된다. 반면에 권력이 인권침해자로 등장하게 되면 이에 대해서 저항할 수 있다는 저항권의 근거가 되었다. 자유권은 앞에서 말했듯이 권력의 불간섭을 요구하는 권리로서 신체의 자유, 정신활동의 자유와 더불어 경제활동의 자유를 강조한다. 경제활동은 재산권, 노동의 자유, 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계약의 자유와 같은 것들이 주요 항목들이었다. 근대시민혁명기에 등장한 평등권은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의미가 아닌 형식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 참정권도 국민주권의 원리에 의해 제한선거제도를 정당화시키는 근거였다.
근대시민혁명기에 터져 나온 자유와 평등, 박애의 정신은 봉건체제의 억압에 눌린 민중들의 절박한 생존적 외침이었고, 따라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시민계급(자본가 계급)은 이를 배신하고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요구를 중심으로 자유권의 내용을 채워버렸다. 결국 민중들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시민계급을 도와 혁명에 참가했지만, 봉건 신분으로부터 해방된 것 외에는 다시 극한 상황의 노동에 의해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지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서구 자본주의적인 인권의 개념이 형성되었고, 이는 현재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권은 이렇게 배신당한 민중들이 프랑스혁명 후기에 민중해방을 위해서는 토지 기타의 생산수단의 사유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도입할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초기 사회주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인권보장의 구상의 특징은 ① 정신활동과 신체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권 ② 실질적인 평등 ③ 교육의 중시 ④ 압제에 대한 봉기 인정 ⑤ 인민주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본가 계급의 자유권이 주로 사적 소유에 대한 자유를 중심으로 구성된 데 비해서 여기서 자유권은 모든 인민의 평등한 자유를 지향한다. 평등도 형식적인 평등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여러 가지 배려의 조처들을 요구한다. 교육은 민중이 각성함으로써 권리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주요한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사회권적인 인권보장은 사회주의운동과 더불어 발전하였고, 이 세력들이 국가를 압박하면서 이를 체제내화 시키는 과정에서 인권의 한 축으로 정립된다. 즉, 사회권 그 자체가 사회주의의 강령은 아닌 자본주의 내에서 보장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체제로 정착되는 것이다. 사회권은 1919년 현대헌법의 시초로 불리는 바이마르 헌법에 처음으로 명기되고, 사회복지 국가의 헌법이 이를 이어받는다. 하지만, 사회권에 대해서 대부분의 복지국가도 실효성 있는 수단을 갖춘 인권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격렬한 계급투쟁으로부터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보호하는 국가의 안정적인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양보되어진 측면이 강하다. 서구에서는 아직도 자유권 중심의 인권체계를 근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이에서 비롯된다.
이런 자유권과 사회권은 2차 대전 이후 세계인권선언에 의해 보편적인 인권으로 정착되었다. 하지만, 선언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관습법이기 때문에 이후 유엔은 보다 실효성 있는 인권보장체계를 염두에 두고 사회권 조약과 자유권 조약을 1966년 채택하고, 1976년 발효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유엔인권선언의 채택에 대해 기권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것과 민족자결권을 명기하지 않았으며,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가 충분하지 않고, 사적 소유권을 인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 양대 인권조약을 채택할 때에도 두 조약을 한 개의 조약으로 할 것인가 둘로 나눌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런 논의들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권에 대한 중대한 논의지점들이다.
3) 인권의 역사에서 배우자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인권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정리할 수 있다.
① 추상화, 형식화하려는 지배세력과 실질적인 권리로 구체화하려는 피지배세력의 대립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인권’을 보는 눈에는 차이가 있으며 양자의 긴장관계의 변화에 따라 ‘인권’의 내용은 변해왔다. ‘인권’개념은 가급적 인간의 권리를 강제력이 없는 강령으로 취급하려는 세력과 실질적 권리를 얻어냄과 동시에 새로운 권리를 계속 수용하면서 ‘인권’의 지평을 넓히려는 세력과의 힘이 양방향에서 충돌하면서 그 충돌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시대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비인간적 상황도 시간이 흐르고 민중의 힘이 성장함에 따라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인식되어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인권항목이 생기는 것이다.
② 인권은 보편성을 띤다는 점이다. 인권은 그 출발에서부터 ‘특권’층의 권한에 반대하는 양상을 띠었다. 어떤 특권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철저히 깔려 있다. 반면에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처음 인권이 왕의 특권에 반대하여 제기되었고(마그나 카르타), 다음에는 봉건영주의 특권에 반대하여 시민계급이 자유권(국민주권론적)을 중심으로 인권을 주장하였다. 다시 시민계급이 특권을 누리고, 민중을 배신하자 각성된 민중은 시민계급의 특권을 반대하였다. 현대에서는 다수자에 대한 소수자의 보편적 권리의 주장까지 가세하게 된다. 이렇듯이 특권과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 과정에서 인권은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며, 그로부터 형식적이나마 인권은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도덕적 권위(힘)를 획득하게 된다.
③ 사회적 약자의 인간적 생존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근대 시민혁명에 민중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는 것은 민중들이 질식할 것 같은 봉건제의 압제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사회권을 주장하던 민중들도 원생적 노동관계에 의한 무한대의 착취에 의해 인간적 생존권이 파괴되는 극한 상황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노동자계급은 노동권을 획득, 확장시켜 왔으며, 여성들은 정치참여권부터 여권의 신장을 가져왔다. 제3세계 약소민족들은 식민제국에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하였고, 선주민들은 선조의 역사를 복원시켜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있는 세력들이 자신들의 인간적 생존권(시민·정치적 권리를 포함하는)을 확장시키면서 인권의 역사를 밀고 왔으며, 반면에 지배세력의 권한들은 점차 축소되어 왔다. 예를 들어 근대시민혁명기 이후 절대적인 권리로 인정되던 재산권 등은 사회복지국가 이념이 보편화된 현대복지국가에서는 적극적인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변화되었다.
④ 위의 정리에서 보듯이 인권은 천부적인 것도,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다. 역동하는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인간의 존엄함을 드러내는 투쟁 과정을 통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진전해온 것이 바로 인권이다. 각 시대마다 인권은 가장 선진적인 이념을 옹호하였으며, 그 이념을 제시하는 진보운동과 결합하면서 발전해왔다. 인간의 해방을 지향하는 그 투쟁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대에 따라 개념마저 바뀔 수 있는 역동적인 것이 바로 인권이기 때문에 ‘인권은 영원한 진보 이데올로기’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인권에 대한 믿음은 언제고 고통 받는 민중의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반면에 서구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인권의 역사는 인권을 매우 왜소하게 만들어 버렸다. 인민주권론은 자본주의 내에서 체제 유지를 위한 만큼의 내용만이 수용되었으며, 사회권도 실질적인 인권으로 아직까지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서구중심의 인권체계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인권에 대한 인식을 유포시켰다.
① “인권의 길을 가는 것은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물론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과정에서 이런 인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이는 분명 왜곡된 인식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인권을 수용하면서 대폭 그 내용과 범주를 축소하면서 체제내화 시키려 한 반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파리코뮨에서 확인된 민중의 인권적 주장을 다시 왜곡(자유권에 대한 탄압 등)시켜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사회주의 체제가 내부에서부터 관료주의 등에 의해 붕괴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권은 자본주의 체제내화 된 가치가 아니라 자본주의도 넘을 수 있는 적극적인 인류의 지향이다. 오늘날 인권운동은 체제를 넘어선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② “자유와 평등은 어차피 현실의 것이 아니며, 인류사회의 강령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체념이다. 이상이라는 것은 늘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이런 체념은 그간의 인권의 역사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해석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로운 시민의 신분으로, 권리의 객체에서 권리의주체로 서기까지 인류의 투쟁은 지난한 것이었다. 그 과정은 바로 자유와 평등을 확대해온 과정에 다름 아니다. 때로는 후퇴와 축소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곤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진전을 이루어오지 않았는가. 지금 필요한 일은 자유와 평등을 추상화시키려는 세력에 맞서 이를 실질적인 인류의 무기로 획득하는 일이다. 연대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③ “자유권이 진짜 인권이다”라는 관념이다. 자유권을 중심으로 놓고 발전해왔던 서구 중심의 인권이 역사를 단면적으로 볼 때 이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했듯이 근대시민혁명 시기 자유권을 주장했던 민중들은 자신들의 노예적 삶을 타파하는 것으로 자유권을 이해했다. 또, 이후 인민주권론에서는 국민주권론과 질적으로 다른 자유권을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자유권과 사회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 인권의 원칙이다. 즉, 현실에서는 이 양자가 통일되어 있지, 어느 것 하나로 구분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빈곤의 상태에 처한 사람은 사회권의 박탈을 경험하지만, 자유권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배제 당한다. 그러므로 자유권과 사회권을 분리하려는 데에는 저의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는 오히려 사회권을 중심으로 인권을 재구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논의도 한편에서는 일고 있다. 생존권을 확보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자유권을 비롯한 여타 권리군(權利群)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쨌거나 어느 영역의 권리도 축소, 등한시할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통일적으로 접근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인권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세계화의 광풍 앞에서 인권은 위기를 맞고 있다. 경쟁의 논리와 무자비한 시장법칙만이 존재하는 세계화에서는 민주주의와 삶의 질의 후퇴가 이미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인권은 인류에게 희망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인권운동은 답해야 하고, 희망이기 위해서 분투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강화와 인권의 전면적 보장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한 해답이 될 것으로 믿는다. 다음으로 한국 사회 인권운동의 발전과정과 인권상황을 살피도록 한다.
3. 한국의 인권, 인권운동
1) 한국 인권운동사 개관
(1) 반독재민주화운동시기
한국에서 인권단체가 나타난 것은 1972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가 결성된 것이 처음이다. 그렇지만 이 단체는 박정희 정권의 탄압 등으로 제대로 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다. 본격적인 인권단체는 1974년 4월 11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가 설립된 것으로 그 기원을 잡는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군사독재권력을 강화한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하고 민청학련,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으로 민주화운동 세력의 탄압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 KNCC 인권위원회가 출범하게 된다. 같은 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도 출범하게 되면서 권력의 극악한 탄압에 맞서 교회가 양심수의 석방, 고문의 폭로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정기적인 예배와 기도회를 갖고, 주간 <인권소식> 등을 발간하면서 당시에는 언론이 철저하게 통제되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정치적인 모임을 갖고 정보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공간을 제공했다. 신·구교 교회는 이런 정치적 투쟁 외에도 도시산업선교회, 노동사목, 크리스천 아카데미 활동 등을 통해서 산업화 시대의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초기 노동운동을 개척하는 역할도 해냈다. 아울러 기독교 신·구교는 농촌사회의 선교활동을 통해 농민들의 인권옹호활동도 펼치게 되며, 이중에는 가톨릭농민회의 활동이 특히 눈에 띤다.
1980년대 들어서서는 전두환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역량들이 확대되면서 인권운동도 더욱 활발하게 진행된다. 워낙 혹독한 탄압이 자행되던 시기였으므로 대부분의 운동에서 인권문제는 필수적으로 제기되었고, 이는 운동세력의 자기보존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1980년대 중반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약칭 민가협, 1985),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약칭 유가협, 1986)가 설립되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지속적인 운동조직이 탄생되었다. 전문가 그룹으로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약칭 민변, 1988), 민주주의법학연구회(약칭 민주법연, 1989)도 탄생하게 되면서 인권운동이 기존의 교회운동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여전히 그 관심 영역은 양심수의 석방과 고문반대와 같은 정치적 자유의 확보에 그 활동의 중심이 주어진다. 그 외에도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인권운동이 제기되고, 1987년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설립되어 장애인운동사에서 비로소 독자적인 인권운동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987년 2월에는 전국의 21개 여성단체가 모여 한국여성단체연합(약칭 여연)을 발족하였다. 여연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여성문제가 발생함을 자각하고 전체 사회의 변화 속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1980년대까지 인권운동은 독자적인 운동이었다기보다는 민주화운동의 한 영역으로 기여한 ‘민권운동’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이때의 인권운동은 정치적 탄압이 극심한 상황에서 정치적 자유의 확보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았다. 이로부터 양심수의 석방과 같은 시민·정치적 권리 영역의 자유 확보를 위해 투쟁했고, 이런 과정에서 국가권력과의 치열하게 맞서는 운동의 전통을 형성하게 된다. 현재의 인권운동이 다른 운동영역과는 달리 국가 영역에 포함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이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2) 1990년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사회운동은 각각의 영역으로 분화하였고, 인권운동은 1993년 비엔나세계인권대회를 경과하면서 비로소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한국의 인권운동 단체들에게는 우물 안의 개구리 식의 인권운동의 관심사를 일거에 허물고, 국제연대까지 고민하는 단계로 진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장애인인권단체, 성소수자 단체,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등 정체성에 기반을 둔 소수자 인권운동이 등장하였고, 인권운동사랑방과 같은 종합적인 인권단체가 등장하게 된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최초로 국제인권조약에 기반을 두고 인권을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특히나 양심수 중심의 협소한 인권운동을 확장할 것, 인권교육의 중요성 강조, 인권운동의 전문화를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인권운동사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1994년 탄생하였던 한국인권단체협의회(약칭 인권협)는 비록 1980년대까지의 자유권 중심의 10개의 제1세대 인권단체들의 협의체로 결성되었다. 인권협은 인권현안에 대한 협의, 공동자료실 운영, 공동의 인권교육, 국제연대 등을 과제로 삼았다. 인권협은 1995년 국가보안법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 이래 내부의 이견 차이로 활동이 중지되었다. 인권협은 인권운동이 비로소 민주화운동에 종속된 부문이 아닌 독자적인 운동진영으로 독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1998년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위한 공대위는 인권운동이 주도하는 가운데 시민운동, 민중운동, 여성운동 등 주요 부문 운동의 전 영역에 걸친 단체들이 거의 망라되어 결성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위한 3년간의 활동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때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두 번의 단식농성을 통해 국가인권위 건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인권운동은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1980년대와 달리 인권운동이 다루는 관심 영역은 크게 확장되었다. 양심수의 문제, 국가보안법의 문제 등 정치권력과의 첨예한 대결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시민·정치적 권리 영역에서도 정치범을 넘어서 시민들의 신체의 자유와 같은 부분으로 확장해 갔고, 1998년 IMF를 경과하면서는 인권운동진영 내에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사회권의 침해 부분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정체성에 기반을 둔 인권운동이 자생적으로 등장하여 구체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고, 과거의 냉전, 독재체제 하에서 발생한 국가범죄에 대한 과거청산 문제도 집요하게 제기하였고, 5.18이나 제주 4.3, 의문사와 같은 분야는 일부 진전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국제인권기준이 국내 인권상황을 재는 잣대로 등장했으며, 유엔과 국제연대운동에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그렇지만 민주화의 지체 현상으로 인해 권력의 민주적 재편, 이에 따른 과거청산 과제들이 뒤로 미루어지면서 이후 인권운동은 매우 복잡한 지형 위에서 운동을 고민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3) 2000년대
국가인권위원회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인권운동이 개척하고 축적한 성과들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거기에 국가기구들이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 이후 국가기구들이 인권옹호기관을 표방하며 인권행위자로 이미지 변신을 하기 시작했으며, 일부분에서는 스스로 인권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그 개혁의 진행과정이 때로는 왜곡되고, 기만적이라고 해도 이제 국가권력을 단순히 인권억압적인 권력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권경찰, 인권검찰과 같은 용어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에 들어와서는 사법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사법부도 인권의 한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인권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군대에서도 인권적 제도가 도입되려 하고 있다. 이처럼 이전에는 인권운동단체들의 독점물이었던 ‘인권’ 영역이 국가권력에 포섭되는 ‘인권의 보편화, 세속화’ 현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를 경과한 인권운동은 조직적으로도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예전의 신·구교 기독교가 주도하였던 인권운동은 종교 인권단체 중심적 운동이 쇠퇴하고, 인권운동 내부도 단일한 입장을 갖기보다는 다양한 입장이 공존하는 네트워크 방식의 운동으로 전환되어 갔다. 단일한 관점이나 지향보다는 폭넓게 제기되는 인권사안들에 대해 인권단체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상황을 낳고 있다. 이라크반전운동, 반미 운동 등으로부터 인권운동은 평화권이란 개념을 구축하고 인권의 논리로 이에 대응할 것을 요청받았다. 그리고 중요하게 제기되는 생존권 문제에 대한 대응도 강력히 요청되는 분야다. 또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급격하게 확장된 과거청산 기구들의 활동에 따라 이에 대응할 인권운동의 임무도 부여받고 있다. 거기에 차별금지법의 제정(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이 우리 사회의 차별의 해소 문제에 대해서도 전략적인 고민을 갖고 대응할 것을 요청받는다. 거기에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운동이나 인권교육도 제기는 되지만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다. 또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세, 자본의 급격한 자유화에 편승한 경제 권력화의 모습 등에 따라 인권운동이 대응해야 할 관심사는 주체의 성장이 더딘 것에 비해서 너무도 급격히 확장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다양한 사안들이 제기에 대해서 인권운동의 연대운동은 의제별 네트워크로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권, 평화권, 경찰감시, 인권교육, 청소년노동인권, 행형, 정보인권 등의 이름으로 네트워크가 조직되어 활동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공동으로 전략을 고민하고, 사안에 대처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또 전체 인권운동진영을 아우르는 연대체로는 전국 35개 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약칭 인권회의, 2004)가 있다. 인권회의는 인권운동진영의 대표적인 연대체로 자신의 위치를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 2002년부터 매년 전국 인권활동가 대회가 열리고 있다.
(4) 인권운동의 성과와 유산
국제 사회에서 인권운동의 발전은 눈부신 것이었다. 이미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인권운동 단체들이 활약을 했고, 그들은 세계인권선언의 제정 과정에도 정부 대표들을 압박하여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진보적인 방향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후 인권단체들은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의 협력단체로 지위를 획득하면서 국제인권조약의 생성과 발전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제사회의 인권운동의 발전에 비하면 한국의 인권운동의 역사는 짧다. 그렇지만 한국의 인권운동은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고, 그럼으로써 인권운동은 다른 운동진영과는 달리 국가와 자본에 포섭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운동의 독자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등장하면서 민간 인권운동의 성과를 잠식하고, 이에 대해 인권운동이 이에 대한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지 못해 위기이기는 해도 인권운동의 이런 독자성은 운동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자성을 획득하고 있는 인권운동은 자생적인 발전을 해왔다. 인권운동은 비록 역량의 한계는 보인다고 해도 그 운동 주체들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 문제들을 절실히 느끼는 주체들에 의해서 자생적인 그룹으로 묶이고, 인권단체로 나서게 된다. 병역거부 운동도 그렇고, 소수자 운동단체들이 그러하다. 이런 점들은 이후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 한 인권운동은 소멸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운동이 제기하는 의제들이 제도화될 때 인권운동이 독자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거기에는 인권을 통한 사회의 진보라는 분명한 관점이 정립되지 않는 한 국가영역에 포섭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인권운동은 상당히 전문화되어 왔고, 인권의 감수성으로 무장한 일군의 활동가 그룹을 낳았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들로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의 인권운동은 매우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운동의 전문성은 강화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인권활동가들의 기획과 실천에 의존하게 되고, 그에 따라 직접 대중을 접촉하는 공간을 스스로 축소하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중이 없는 인권운동은 그만큼 정치적·사회적인 영향력 면에서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인권운동의 성장이 오히려 각 운동단위를 파편화시키면서 연대성의 위기를 낳고 있다는 점도 부정적인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사안의 상대적 독자성이 강조되다 보니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운동의 목표와 그를 이루기 위해서는 연대의 대한 공동의 인식이 부족하게 된다. 또한 인권운동이 대응해야 할 사안에 비해서 활동가 층이 너무도 엷으며, 인권운동단체들이 체질적으로 허약하다는 점이 작동하고 있다.
2) 한국의 인권 현실
(1) 한국 인권현실의 복잡성
신자유주의 세계화(또는 지구화) 시대에서 국가가 약화되고,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강화되고, 시민사회는 분절화하며, 사적 영역은 개인정보의 통제, 생체인식 기술의 발전 등으로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는 지적들이 있다. 이런 지구화 시대에서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기능을 회복하고,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강화되어야 하며, 사적 영역의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될 것이 요청된다는 국제적인 인권운동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지구화 시대의 인권문제들이 그대로 나타난다. 초국적 자본의 공세에 의해서 노동권이 크게 도전받고, 민중의 생존권이 심각하게 후퇴한다. 국가는 자본과 시장의 자유를 위한 양보 정책을 기본 정책으로 삼기 때문에 이에 따라 자본(또는 기업)의 권력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인권 보장 체계로부터 강제적인 배제의 결과인 빈곤층이 심각하게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정보인권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주민등록제도, 그리고 지문날인제도가 합헌이라고 인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청과 감청, 생체인식정보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인터넷 실명제 등이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거기에 차별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임금의 절반을 받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결성하기조차 힘들며,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은 차별을 받는 대표적인 소수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와 시민사회, 사적영역에서 모두 인권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지구적인 보편적 인권문제에 더불어 한국적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는 과거청산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일제시대 때의 정치, 사회, 문화적 유산을 청산하지 못했고, 특히 인적인 청산은 더욱 어려웠다. 거기에 군사독재권력에 저질러졌던 학살, 암살, 의문사, 정치적 의혹 사건들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물론 김영삼 정권 때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재조명, 김대중 정부에서는 의문사 사건과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일부 이루어졌고,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일제시대부터의 정치적 의혹 사건과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과거청산 작업은 첫 단계인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의 단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또 개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책임자의 처벌이라는 원칙이 방기된 채 진행됨으로 인해서 과거청산의 왜곡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다. 과거청산은 아직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구조의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러 영역의 인권문제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한국의 인권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2) 민주주의 후퇴 현상
지구화 시대의 인권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모든 나라에서 같이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후퇴 현상과 맞물려 더욱 복잡해진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자본의 자유, 시장의 자유 정책을 근간으로 국가의 정책이 시행되다보니 정치적 자유를 통한 민중의 요구를 수렴하는 정당체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 이후에 민주주의는 군사정권의 뒤를 이은 민간정부에 의해 책임이 지워지게 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민간 정부들은 나름대로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반민주적인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하는 과정을 밟아나갔다. 특히나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인권이란 화두를 제기하여 이전의 정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지점들을 정치권력이 선도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재벌을 해체하기보다는 이들의 헤게모니에 편승하고 이에 흡수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민주화 시대의 청산대상이 된 수구 정치세력은 이 과정에서 서서히 자신들의 힘을 축적하게 되며, 냉전 보수주의-반공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냉전 해체 이후의 정치상황에서도 이념적 대립구도를 고집하고 이에 따라 아직도 국가보안법과 같은 반공주의 질서가 온존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더욱이 이전에는 권력의 시녀로 권력의 요구에 따라 독재권력의 유지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사법권력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 단순하게 정치적 사건에 대한 해석의 단계를 넘어 행정부와 의회의 정책결정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 물론 이 사법권력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강화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수구냉전적인 기득권 세력들의 이해에 편승하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의회의 행정수도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하고, 국가보안법 합헌이라고 결정하여 의회의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대법원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수십억 원의 배상금을 노동조합에 물리는 판결을 내려서 노동조합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결정이나 판결들은 결과적으로 민중들에 대한 배신행위로 귀결된다. 오로지 자본의 권력을 강화하고, 반공적인 질서를 유지하는데 보탬이 된다. 이로서 선출되지도 마땅한 통제 시스템도 없는 권력인 사법권력이 국가의 주요 정책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과정은 민주주의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해가는 반면에 내용적인 면에서는 민중들을 배제하고 자본과 냉전적인 보수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므로 궁극적으로 인권의 진전에는 역행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는 지금까지의 인권침해자에서 인권옹호를 위한 행위를 하는 인권행위자로 탈바꿈한다. 구조적인 폭력을 은폐하면서 국가가 적극적인 행위자로 탈바꿈하면서 인권의 담론을 변질시킨다.
(3) 한국 사회 주요 인권 의제들
한국의 인권운동이 해결해야 할 인권의제들로 주요한 것을 꼽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a. 불평등한 인권상황의 집약인 빈곤
한국의 인권운동은 1997말 불어 닥친 IMF 사태 이후부터는 사회권 운동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해 왔다. 인권운동 진영 내에 사회권전략팀이 구성되어 있으며,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권에 대한 대응 등으로 나름대로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민중 운동진영 내의 사회권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높아졌고, 2005년 4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관련한 권고를 이끌어내면서 당시의 비정규직 확산을 위한 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회권운동을 전개하는 데는 여전히 문제가 뒤따른다. 민중들은 자신들의 대중조직을 만들어서 사회권 확보를 위한 실천투쟁을 전개한다. 그들의 힘은 거대한 시위와 행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사회권 영역과 관련한 전문 단체들이 이미 오랜 세월 동안 활동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운동은 어떤 사회권 운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권의 악화는 빈곤의 문제로 집약된다. 빈곤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이 지금의 정부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기정사실화하고 몇몇 가지 ‘사회 양극화 해소’와 같은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인권의 이름으로 빈곤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공공연한 저항을 하는 것, 절박한 민중들의 생존권 문제를 인권운동이 끌어안고 권리로서 주장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이 사회공공성은 점점 더 후퇴하고, 그러므로 사회권 전 영역에서 권리의 급격한 후퇴 현상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생존권적 위기에 몰린 민중들은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게 된다. 그럴 때 국가와 자본은 이들 민중들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수렴할 수 없는 관계로 유독 이들의 투쟁에 대해서 폭력적인 억압을 가하게 된다. 최근 노동자와 농민,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집회·시위 현장에 경찰의 폭력이 집중적으로 나타났고, 2005년 11월에 농민대회에서 경찰의 살인진압으로 2명의 농민이 사망하고, 2006년 포항건설노동자가 사망에 이르렀던 일은 우연이 아니다. 인권운동은 이들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을 옹호하면서 적극적으로 국가에 사회권을 실현을 요구하고 관철해 내야 한다.
2006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법률과 노사관계 법률들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고, 이에 따라 사회 양극화는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는 결국 빈곤현상이 더욱 심화되며, 더욱 많은 이들의 인권보장체계의 밖으로 강제로 밀려난다는 말이 된다.
b. 북한인권(또는 통일인권, 한반도 인권)
이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인권운동진영이 쥘 수 있느냐는 이후 인권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북한 체제가 갖는 불안정성을 감안하여 북한의 인권문제를 꾸준히 제기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과 국내외 반북단체들의 정치공세에 대한 방어를 넘어서 북한의 인권개선을 개선시키기 위한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인권론은 북한의 인권문제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념적 대결구도를 만들어내어 냉전 수구적 질서가 해체되는 것을 막고, 이를 강화하려는 우익세력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크다. 그들은 미국의 보수집단의 이해관계와 맥을 같이 하면서 북한 체제를 붕괴하는 일에 인권을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매우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제기하는 그 집단들의 정치적인 의도를 폭로하는 일은 북 인권 사업의 선차적인 과제로 등장한다. 북한 인권론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면, 그간의 인권운동의 성과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금 반공주의적인 인권관이 판을 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실제 북한의 인권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 이 상태로 통일로 가게 되면 북한 인민들은 2등 국민으로 전락하며 심각한 차별과 인권침해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따라서 지금의 북한 인권에 대한 보수 수구진영의 대응을 넘어서 ‘통일인권(또는 한반도 인권)’이란 관점으로 적극적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 인민들의 인권수준을 공동으로 향상시킬 방안은 무엇인가를 진보적 인권운동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c. 평화권(뒤 보론 참조)
북한 인권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요소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평화권의 문제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 구도를 한반도에서 깬다는 것이 되므로 이는 한반도 정세에 의해서 인권상황이 규정되는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면 이는 동북아만이 아니라 세계의 평화에서도 거대한 진보를 이루는 것으로 된다.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의 보수화, 일본의 군국주의화, 중국의 패권주의, 러시아의 민주주의 후퇴의 경향이 우리 사회의 보수화를 자극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한 국내외 상황들은 정부 관료들 간에서 비밀리에 합의되고, 처리된다. 2005년 1월 19일 한-미 외무장관들의 성명으로 발표된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그동안의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을 비롯한 주한미군재배치 사업들이 미국의 선제공격론에 입각하여 한반도 남단을 전쟁기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군사적인 의도가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을 강행하는 정부는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들이는 재앙을 만드는 것이다. 매년 수차례 씩 진행되는 한-미-일 간의 합동군사훈련은 북한에 대한 정밀타격,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에 대한 공격과 나토군과의 작전 공조 등을 위한 군사훈련이다. 한반도에 기지를 둔 미군은 수시로 세계를 드나들면서 전쟁을 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연류효과에 의해서 한국은 전쟁 당사국이 된다. 따라서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폐기, 미군기지 이전협정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재협상 등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필요하다.
또 이라크에 대해서도 여전히 자이툰 부대 파견을 유지하고 있고, 부대의 활동 성격도 미군과 함께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역할로 바꾸려 하고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또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에도 군대를 파견한다. 이렇게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편승하여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활동은 세계 평화애호세력들에게 공격을 받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요한 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핵 실험 등에서 보이는 군사주의적 대결 양상이다. 북한이 핵을 갖고자 하는 열망을 미국의 부추겼다고 하지만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핵은 제거되어야 마땅하다. 북한 핵의 제거와 동시에 한반도 비핵화, 나아가 동북아 비핵화를 실현하는 상황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는 6자회담이 성과를 내고,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조약이 체결되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긴요하다.
d. 차별
차별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의제화되었고, 인권운동 진영에서도 소수자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최근에서야 관심을 돌리고 있는 의제다. 차별은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김대중 정부 이후에 사회복지 분야에서 4대 사회보험이 도입되었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는 등 나름대로의 사회복지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다수자들에게는 일반적이고 당연한 이런 사회복지 인프라는 소수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거나 미약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소수자들은 사회권의 대부분의 항목들로부터 배제되어 있고, 그들의 기본적인 자유권적 기본권에서도 기본적인 항목조차에서도 배제되게 된다. 차별의 해소를 위해서 인권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차별 문제를 제기하는 소수자 집단과 제대로 연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껏 인권운동에서 차별의 문제는 적극적으로 의제화되지 못하고, 당사자들의 투쟁에만 내맡겨 놓은 점이 없지 않았다. 이는 적극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2006년에는 차별금지법이 발의되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하나의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차별의 구조를 인식하고, 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거기에 권력화된 기업을 어떻게 인권의 언어와 방법으로 감시하고, 기업의 인권침해와 차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인권운동의 의제는 종합적이다. 인권의 의제를 각자 운동영역 안에 한계 지우고 전체적인 흐름, 전체적인 의제를 놓칠 때는 인권운동은 계속 내부로만 침잠하면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의제를 선점하여 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인권운동은 늘 부분에 집중하면서도 전체를 놓치지 않는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인권 감수성으로 단련된 인권활동가의 눈으로 이런 의제들을 종합해내고, 분석해내고 제기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인권운동의 운명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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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엮음, 『2005 한국인권보고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2005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후마니타스, 2005
서준식, 「진보적 인권운동을 위하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창립 10주년 기념 토론회 자료집, 1998
박래군, 「한국의 인권운동, 그 위기 진단과 방향 모색」, 2006(미출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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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지구화시대의 평화·인권문제의 성격과 대응방안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1. 지구화시대와 인권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를 지구화(Globalization)로 정의하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지구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고도 하고, 이는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지칭한다. 냉전시대가 끝난 뒤 인류는 ‘인권’의 시대가 열리리라는 기대를 잠깐 동안 가졌다. 그에 따라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그동안 인류가 축적해온 인권적 가치의 세계적인 확산과 적용에 대한 자신을 보였다.
그렇지만 냉전이 끝난 뒤에 전지구적으로 몰아닥친 지구화 바람은 갈수록 인권이 설 자리를 밀어내고 있다. 다국적 금융자본이 종횡무진으로 지구를 휩쓸면서 오로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켜 왔다. 지구화시대에서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실현해야 하는 국제인권조약의 당사국인 국가들은 약화되어 있고,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강해짐에 따라 시민사회는 분절화된다. 자본은 공적 영역을 해체하여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을 것을 강요하고(민영화), 모든 것을 자본주의 질서 속에 편입하려든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고스란히 보전되어야 한 사적영역도 안전할 수 없다.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와 상품화만이 아니라 이제는 생체정보까지 상품화하려드는 상황에서 사적영역도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와 같이 지구화시대에서는 그간 국가와 시민사회의 협력모델에 의해서 발전되어온 인권보장 시스템이 모두 해체될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래서 국제적으로는 유엔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던 국제인권레짐이 작동하지 않게 되거나 형식화되고, 국제인권레짐보다는 WTO나 IMF와 같이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는 국제경제기구들이 중시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서비스 영역이 민영화되어 가는 과정이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미명 하에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가 설치되도록 하는 과정, 네이스(NEIS)와 같이 개인정보를 집적하려는 것과 같은 것,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노동권을 형해화하려는 지속적인 시도, 올해 한미 FTA 협상을 체결하여 미국식 자본의 공세 앞에 국가의 경제영역을 종속시키면서도 일부 자본의 이익을 취하려는 시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거의 자본(시장)의 공세는 무차별적으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인권의 주체자인 개인들은 끊임없는 경쟁체제에 내몰리고, 빈곤의 상황은 심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지구화시대에서 민중들은 최대의 인권피해자일 수밖에 없고, 이들은 당연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국가에 저항하게 되지만, 이에 대해서 국가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민중들의 요구를 정책적으로 수용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경찰폭력이 민중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투쟁현장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그래서 지난해에 전용철, 홍용덕 등 2명의 농민이, 올해에는 포스코 건설노조원 하중근 등이 사망하기에 이르렀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르면 과거에는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이었던 세력들-인권에 우호적이었던-이 보수화되는 현상을 보이게 되고, 이들 세력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서 초국적 자본이 요구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중간층이 분해되거나 약화되어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전형적인 20:80의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대결구도로 단순화되는 것을 말하며, 이 대결은 점차 생존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화하게 된다. 이때 ‘법의 지배’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 시스템도 붕괴하면서 입법·행정·사법부가 모두 지배계급의 이해를 전일적으로 대변하거나 관철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에 따라 법치주의의 외곽으로 밀려난 민중들은 투쟁을 통해서 권리의 회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즉 인간이 폭정과 탄압을 견디다 못해 최후의 수단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될 정도로까지 몰리게 되며 이에 따라 세계인권선언이 그토록 지키려던 “법치를 통해 인권을 보호”하는 상황이 종료되는 끔찍한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지구화시대의 인권상황을 정리하면, 국제인권레짐과 국가에 의한 인권보호시스템의 붕괴로 인해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영역만이 아니라 시민·정치적 권리 영역만이 아니라 후퇴하거나 침해되는 인권의 총체적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지구화시대에서는 인권의 이념이 보다 급진화시킬 필요성이 요청된다. 인권의 이름으로 총체적으로 인권에 대한 공격에 대해 방어막을 형성하고, 인권을 수호하려는 투쟁을 옹호해야 할 의무를 인군운동이 지게 된다.
2. 인권과 평화의 관계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인류는 인권에 대한 무시가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고심했고, 그에 따라 유엔을 창설하였으며, 세계인권선언(1948)을 비롯하여 ‘경제·사회·문화적권리에관한국제조약’(1966), ‘시민·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조약’(1966) 등 각종 분야의 국제인권조약들을 마련하고 발효시켜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인권보장, 실현을 위한 이와 같은 노력들에 의해서 제1세대 인권만이 아니라 제2세대 인권이 보편인권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아울러 식민지해방투쟁과정에서 등장하게 된 민족자결권을 비롯해 평화에 대한 권리, 환경에 대한 권리, 인류문화유산에 대한 권리, 발전의 권리 등에 대해 논의하고, 이에 대한 인권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들(유엔의 결의, 선언의 채택, 이를 통한 조약화의 모색)이 계속 경주되어 왔다.
평화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만 그 논의와 발전의 과정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한국사회에서는 ‘평화권’을 ‘평화적 생존권’으로 구체화하여 논의하는데,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평화적 생존권은 진즉부터 중요한 권리로 인정되어 왔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인권선언(1948)에서는 대서양헌장(1941. 8. 14.)의 정신을 이어서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세계의 도래가 일반인의 지고한 열망”임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정신은 사회권조약과 자유권조약의 전문으로도 이어지고 있어서 모든 인권의 기본전제로 평화적 생존권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평화적 생존권은 유엔 결의 등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1976년 유엔인권위원회 결의, 1978년 유엔총회의 ‘평화롭게 생존하는 사회의 준비에 관한 선언’, 1984년 유엔총회의 ‘국민의 평화권에 대한 선언’ 등이 그것이다. 이중 1984년 유엔 총회의 선언에서는 “국민의 평화적 생존의 확보는 각 국가의 신성한 의무임을 확인하고…지구상의 국민은 평화에 대한 신성한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3세대 인권의 한 종류로서 평화권이 구체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평화적 생존권은 현행헌법의 중요한 법적인 지위를 얻고 있다는 게 법학자들의 해석이다. 현행 헌법에서 평화적 생존권은 헌법 전문과 헌법 제4조, 제5조, 제6조 등에서 나타난다. 이들 조문들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평화국가를 지향하고 있고, 평화국가의 내용으로 최소한 “침략전쟁의 부인과 국군의 전수방위의무 등의 국제평화주의와 무력통일을 금지하고 평화통일의 수립·추진 등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주의를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은 “헌법상 평화주의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평화국가에서 공포나 불안 없이 생존할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평화적 생존권은 구체적으로 “① 자유권(전쟁·군비·전쟁준비로부터의 자유로서 권력적 침해를 배제하는 권리) ② 참정권(전쟁·군비확대에 반대 내지 저항하고 평화로운 세계의 형성을 위하여 국가행위에 능동적으로 참가 내지 영향을 행사할 권리) 그리고 ③ 사회권(국가의 공권력의 적극적인 발동에 의하여 보다 나은 평화적 생존권의 확보·확충조치를 취하도록 청구하는 청구권적 권리)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헌법학자들은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에서 평화적 생존권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헌법 제37조 제1항)는 원칙에 따라 헌법적 기본권으로 분명히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평화적 생존권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에는 헌법 제10조 이하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이 유명무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적인 전쟁의 위협을 받으면서 어떻게 기본권의 향유를 말할 수 있겠는가.
3. 지구화시대의 평화
평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분포하지만, 대체로 평화의 개념을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나누어 사고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는 갈등, 전쟁, 혹은 폭력의 부재 상태로 정의된다. 이 사고는 평화와 전쟁이 개념을 묶어서 사고하는 것으로 가장 일반화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유네스코는 ‘국제이해교육’(International Education)의 입장에서 평화를 정의하는데, “전쟁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오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고, 국제체제나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러한 이해는 국제적 이해를 낳을 것이며, 그러한 국제적 이해가 국가 간의 관계를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소극적 평화관을 비판하면서 나온 것이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의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평화는 개인의 의식개조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고, 구조적 폭력에 주목하여 사회의 구조적 폭력, 혹은 잠재적 폭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평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비판적 평화연구’이라고 하고 이 경향을 대표하는 사람이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다.
이들이 논의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평화에 대한 이해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만이 아닌 구조적 폭력의 제거 상태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에 같은 입장에 따르면 국가의 폭력(경찰의 폭력), 사회적 폭력(빈곤의 심화 현상), 문화적 폭력(인종주의, 성차별) 등이 모두 제거된 상태를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평화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발전해온 인권의 개념을 대체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혼선을 초래하는 개념일 수 있다.
이와 같은 평화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이후 연구자들의 몫으로 미루고 지구화시대에는 어떤 양상으로 평화가 위협당하는 지를 살펴보자.
냉전시대의 종료 이후 강대국 중심의 핵무기 경쟁과 대결보다는 지역적 차원에서 민족분쟁, 종족 분쟁이 더욱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최근에 다시 파키스탄이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핵무기 보유에 나서고 있다고 해도 대체로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국지전이 대체적인 양상이다. 이 국지전에 통제를 받지 않고 소규모 재래식 무기가 거래되고 있고 이에 따른 폐해도 급증하고 있다. 또 소년병사들(심지어는 소녀 병사들)이 분쟁에 동원되고, 그 살상의 참혹함도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이런 국지전으로 인해서 사상자 등 희생자의 80% 이상이 비무장 시민들이다. 이들 중에는 여성과 어린이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런 종족분쟁과 인종분쟁에 의해서 난민이 급증하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강간,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국지전에는 무기 거래를 통해서 이익을 취하려는 강대국 군수산업자본이 도사리고 있고,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작동하면서 어느 국지전이든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하지만 지구화시대에 가장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는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미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세력들을 사전에 제거하여 미국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위협요소에 대한 선제공격전략(여기에는 2002년 핵무기태세 보고에 의하면 전술핵 사용도 가능하다)을 세워놓고 있다. 이런 군사전략상의 변화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의 침공,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였고, 이에 불량국가로 분류한 이란과 북한에 대한 전쟁 위협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또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레바논의 침공의 배후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미국이다. 미국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미사일 방어망(WMD)을 구축하고 있고, 미군의 재배치를 통해 동북아를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구화시대에서 미국의 일방주의, 패권주의는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 이런 미국의 패권주의는 다국적 금융자본,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그대로 대변한다. 지구화시대에서 각국에서 복지정책은 후퇴하고, 공적 영역에 대한 예산은 줄어든다. 그런 관계로 “세계 소득 최상위 1% 소득은 하위 57% 인구 총소득과 맞먹는다. 세계 소득 최상위 5%의 소득은 최하위층 5% 소득의 114배에 달한다. 자기 호주머니에 돈을 한 푼도 갖지 못한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이와 같은 빈곤의 구조화는 세계의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고,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안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폭력적으로 진행되는데 WTO 체제나 최근에 국가별로 맺고 있는 각종 FTA들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반을, 따라서 평화의 기반을 허물어가고 있다. 즉 지구화는 평화에 반하는 구조적 폭력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독일 브레멘 대학의 경제학 교수 홀거 하이데는 이런 지구화시대의 반평화적이고 반인권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 … 지금 우리 사회 일반이 당면한 문제들의 복합적 관련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적 접근이 아니라 총체적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보통 말하는 환경 훼손 문제나, 인간 건강의 물리적·심리적 파손, 인간관계나 공동체를 이루는 기초의 파괴 등은 사실상 모두 뿌리가 동일한 문제들이라고 봅니다. 그 뿌리는 한마디로, 인간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맺는 관계가 파괴적이고 착취적이라는 점입니다. 그 바탕에는 자본의 파괴적 합리성이 근본 문제를 이루고 있지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실업 문제, 작업장 내 노동통제 문제, 사회 보장과 그 감축의 문제, 인종주의, 성차별, 국제 연대 등의 특수한 문제들도 모두 이 점과 연관이 있습니다.”
4. 지구화시대의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의 과제
일부의 학자들은 지구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의 가치를 확산하는 긍정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긍정성이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지구화가 낳는 폐해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지구화의 결과는 불평등의 심화이며, 평화의 파괴로 나타난다. 세계적으로 빈곤이 심화되고, 전쟁의 위협 속에 내몰리게 된다. 소수의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가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상황은 인권의 관점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어떤 논리를 들이댄다고 해도 2차 대전 이후 발전해온 인권과 시장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지구화시대에서 인권운동은 어떤 과제들을 안고 있는가?
먼저 지금까지의 인권의 개념을 급진화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 서구에서 발전해온 인권개념은 자유권 중심이며, 그 근본에는 소유(사유재산제)를 절대시하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권을 추상적인 권리로 규정하면서 법적인 권리로 구체화하려는 노력에는 소홀하다. 시장의 질서, 자본의 질서를 부정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착취와 불평등의 근절을 위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구화시대의 시장의 질서는 ‘불로소득’의 적극적인 옹호인데, 이를 인정하는 것은 인권의 원칙인 평등을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적인, 급진적인 인권개념의 개발이 요청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권의 적극적인 의미를 분명히 하고, 발전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 발전권은 한 집단의 발전에 대한 계획과 결정, 시행, 결과에 대해서 그 집단 구성원이 민주적인 참여와 공동의 책임, 공동으로 결과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개념이다.
“인권운동은 모든 불평등에 맞서는 급진적 민주주의 운동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체제와 생활영역 모든 수준에서 불로소득의 구조와 이념을 인권운동의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시장을 넘어서 추진되는 다양한 실험과 원리와 인권운동이 결합하고 시장을 넘어선 체제의 인권기준을 제시하고자 노력할 때 인권운동의 진보성을 실현할 수 있다.”
나아가 인권운동은 지구화시대에서 인권피해를 당하는 다수의 피해자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 지원하고 연대해야 한다. 지구화시대에서 국가적 차원에서나 국제적 차원에서나 인권의 보장과 실현의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에 경고하고, 국제인권레짐의 정상화와 국가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각성과 이를 위한 인권교육은 기본이다.
이런 인권운동은 지구화시대에서 평화운동과 자연스레 만난다. 지구화는 반평화적인 구조를 고착, 강화하기 때문이다. 이로서 서로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던 두 운동의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제는 인권운동 따로, 평화운동 따로가 아니라 서로가 한 몸을 이루면서 지구화에 대한 대항전선을 형성해가야 한다. “평화는 인권이다(Peace is a human right).”라는 구호는 지구화 시대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개념을 법적인 개념인 평화적 생존권으로 구체화하고, 그의 구체적인 발현인 소극적인 평화의 실현을 넘어 적극적인 평화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평화운동이 주로 군사적인 분야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역점을 두어왔다면 이후에는 대안적인 평화체제의 형성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평화운동은 군사주의와 국가주의, 다른 말로는 ‘국가안보론’을 해체하는 방향에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안보론이 사실 전쟁론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들은 비밀로 분류되는데, 이 비밀스러운 계획의 입안과 집행은 곧바로 한 국가 단위 또는 세계 차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것을 ‘국방독재’ 또는 ‘안보독재’라고 부르는데, 안보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정보접근 자체가 차단되므로 우선적으로 시민사회는 안보독재체제를 허무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체로 안보론은 공포의 조작을 통해서 국민들을 위협하게 되므로 사실상 민주주의와는 다른 길을 강요하게 된다. 미국에서 9.11 테러 이후 애국법의 등장과 그로 인해 시민·정치적 자유가 엄청나게 침해되었던 사실들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국가권력은 늘 이와 같은 공포의 조작을 정치에 활용하려 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런 국가안보론은 또한 민족과 국가를 앞세우지만 거기에는 남성주의, 가부장제의 음모가 깔려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한 사회에서 가부장적 질서가 주는 위험성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이런 국가안보론에 대신하여 ‘평화주의 안보론’을 대안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지구화 이전 시기 냉전시대에는 주로 핵무기 확산 반대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던 평화운동은 최근에는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평화운동이 지향하는 내용들이 사실은 평화운동의 주제들이므로 이를 나열해본다. 종교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평화운동, 유엔 등 국제기구들을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국제평화운동, 노동계급과 진보세력들이 연대를 통한 평화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운동, 권력의 남성적 본질을 변화시켜 평화를 추구하려는 여성주의적 반군사주의 운동, 핵무기, 대인지뢰, 소형 무기 등의 폐지를 추구하는 무기폐지 및 무기거래금지운동, 생태주의에 기초한 생태운동이 지구상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운동들이 추구하는 과제들이 사실상 평화운동의 과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사회에서 평화운동의 필요성은 지구상의 어느 곳보다 더욱 절실하다. 그것은 이질적인 체제가 대치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되어 있으며, 오랜 군사독재에 의해서 군사주의, 남성가부장적 문화가 완고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어느 지역보다도 군사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을 비롯해서 주한미군재배치, 또 북한의 핵실험까지 있고 난 상황이라서 군사주의는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진보운동진영의 적극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총체적인 대응이 절박한 과제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평화의 문제를 외면하고는 인권운동도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만큼 평화운동과 인권운동이 일치를 보는 곳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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